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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이 내게 던진 질문들
다시 책장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꺼내들었다.
표지의 가을빛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펼치자 낡은 종이 냄새가 났다.
첫 페이지를 넘기며 영혜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영혜는 평범한 삶을 살던 여성이었다.
키는 보통이었고, 얼굴도 특출나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를 '무난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꿈에서 본 끔찍한 고기 이미지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의아했다.
꿈 때문에 식습관을 바꾸다니.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속에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혜의 결정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쌓여온 상처의 표출이었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남편의 시점이었다.
그는 영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갔다.
두 번째는 형부의 시점이었다.
그는 영혜에게 성적 욕망을 느꼈다.
마지막은 언니의 시점이었다.
그녀는 동생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무력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영혜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그녀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 내가 물구나무 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녀의 말에는 깊은 절망과 동시에 해방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영혜의 모습은 점점 야위어갔다.
처음엔 고기만 먹지 않더니, 나중엔 채소도 거부했다.
그녀는 햇빛만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의사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언니만이 그녀 곁을 지켰다.
이 소설은 단순히 채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폭력성, 억압된 본능, 그리고 해방에 대한 깊은 탐구다.
읽으면서 우리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얼마나 무력한가.
한강은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글은 깊이가 있고,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영혜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녀가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폭력과 억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결국 독자인 우리의 몫일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어쩌면 영혜는 저 나무들처럼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폭력 없는 세상, 억압 없는 삶.
그것이 그녀가 꿈꾸던 세상이었을까.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소설이 내게 던진 질문들을 오랫동안 곱씹을 뿐이다.